[CEO창업열전] 이사·택배업체 ‘KGB’ 박해돈 회장
아무도 이를 시작이라고 보지 않았다.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이것이 바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. 그도 그럴 것
이 이것은 우리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너무 사소한 것이라서 사람들이 눈치조차 채
지 못했던 것이다.
1977년 여름. 당시 19살이었던 박해돈 청년은 서울시 도곡동 소재 아파트입주현장에
서 이사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봤다. 그가 이곳에서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이삿
짐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불량스러운 옷차림과 쌍소리. 이사현장 곳곳에서 아파트 주
민과 이사하는 사람들이 핏대를 올리며 싸움을 벌이는 것도 주시했다. 이사를 할 때
벌어지는 이사화물을 함부로 다루는 일과 팁 요구가 대개의 싸움 내용이었다.
이사 현장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는 점차 빛이 나기 시작했다. 희열가득 차가고 있다
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.
“ '바로 이것이다’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습니다. 이게 나의 평생 업이 될 것
이다는 생각이 퍼뜩 들대요. 이사 서비스 질을 대폭 확대하자는 게 나의 생각이었습
니다.”
이게 시작이었다. 포장이사개념과 이사보관업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, 이사혁명을 일
으키고, 국내 최대의 이사회사가 된 KGB의 시작이었다.
그 길로 청년은 이삿짐 업체에 취직했다. 그토록 찾아다녔던 사업아이템을 찾아냈다
는 생각에 하루빨리 일을 익히고 싶었던 것이다. 어렵사리 얻은 주택공사 급사 자리
도 마다하고 서울시 천호동에 소재한 동신통운에 입사했다.
당시 이사업계는 지금과 달리 장비가 태부족, 인부들이 힘들게 이삿짐을 하나하나
옮겨야만 했다. 하루하루가 육체와의 전쟁이었다. 그러나 19살의 소년에게는 결코
힘들지 않았다. 평생 해야 할 일인데 힘들 것이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.
일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었다. 토, 일요일 또는 휴일에 일이 몰리고, 주중에 쉬는 날
이 많았다. 일이 없으면 이삿짐 인부들은 질펀하게 잠을 자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게
일과 였지만 청년에게는 이게 영 마뜩지 않았다. 그는 하루라도 일이 없으면 몸이 근
질거렸다.
그래서 택한 것이 이사 마케킹. 주택공사를 다녔던 경험을 살려 서울시 둔촌동 주공
아파트 이사현장에 나갔다. 키를 받으러 온 입주자를 상대로 명함을 돌렸다. 명함돌
리기는 지금은 보편화된 마케팅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시도였다. 청년은 이
명함돌리기로 둔촌주공 아파트 입주민 이삿짐을 거의 독식하다시피했다.
“당시 회사 사장만 돈을 벌었지요. 인부들이야 그리 큰 돈을 벌었겠어요.”
청년에게도 소득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. 무엇보다 자신의 마케팅이 성공했다는
데 자부심을
느꼈다. 마케팅에 자신을 얻은 그는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다.
1983년 그는 서울 잠실에 조그만 개인사업체를 차렸다. 이삿짐 업계에서 뒹군 지 만
4년이 넘을 무렵이었다. 이삿짐 업체는 처음부터 잘되었다. 적절한 마케팅을 구사,
끊임없이 들어오는 일거리로 청년사장은 하루한시를 쉴 틈이 없었다. 회사가 점차
커져갔다.
1986년 초 회사명을 고려통운으로 바꿨다. 당시 대기업이었던 대한통운을 고려한 사
명변경이었다. 이는 또한 대한통운을 겨냥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. 단순히 사
명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. 그가 노린 것은 이사혁명이었다. 국내 최초로 포장이사를
도입한 것이다.
“이사업계에 뼈를 묻기로 할 때부터 구상했던 사업아이템입니다. 다른 업체와의 차
별화가 분명할 것이라는 판단에 오랫동안 고심했던 것을 구현한 것입니다.”
이는 처음부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.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찾았다. 특히 전문가집단
에서의 반응이 뜨거웠다.
“포장이사는 의사 변호사 검사 교수 등 전문가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.
이들에게 ‘이사는 우리에게 맡기고, 당신들은 자신의 일을 하라. 그게 돈을 더 버는
것이다’라는 개념을 제시, 호응을 얻었지요.”
다른 업체들도 따라왔다. 전문가 집단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너도나도 포장이
사를 택하는 바람에 일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.
“ 처음에는 마진이 높은 포장이사에서 이득을 많이 봤지요. 그러나 많은 업체들이 포
장이사업에 참여하면서 마진폭이 줄어들어 지금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. 그러나 포장
이사를 국내에 처음 도입, 이사문화를 한 단계 높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.
1989년. 박 사장의 나이가 서른 살을